꿈에 그리던 New York City 여행기

2016년 2월 7일 밤 9시 49분, Begin again 을 보고 뉴욕의 풍경이 너무 그리워 쓰는 블로그 포스팅.

왜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어릴때부터 미국이 좋았다. 2014년 가을에 우연한 기회로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산타바바라, LA,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실리콘벨리; 를 2주쯤 여행했을 때도 너무 좋았다. 그 때 또 한 번 다짐한다, 꼭 뉴욕을 가겠다고…실행에 옮기기까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2015년 12월 19일 싱가폴 창이 공항에서 출발해 중국 샹하이 푸동 공항을 거쳐 비행기만 20시간쯤 타고 뉴욕 JFK공항에 도착했다.

미국 서부의 공항들은 애정했는데 JFK는 조금 더럽고 별로라는 느낌을 받았고 공항을 나오자마자 택시 삐기가 무척 많아 완전 쫄았다. 뉴욕의 지하철은 무척 더러웠고 Bronx에 위치한 에어비앤비까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는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장시간 비행에 지친 몸이었으니 더욱 더. 1시간 30분 정도 지하철을 타니 174st 역에 다다랐고 우리는 몇 달만에 재회를 했다. 더럽고 더러운 그 174st 역 개찰구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Ali라는 자메이칸 어머니와 원주민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훤칠한 청년이였다. 가족과 그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이제는 Ali의 집이 된 1560 Grand Concourse, 2층 맨 왼쪽 집. 크리스마스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에 올려놔서 고마워!

짐을 대충 풀고 우리는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Bubba Gump Shrimp 레스토랑에서 뉴욕에서의 첫끼를 해결했는데 그 양에서 압도당했다. 역시 미국이야! 너무 피곤한 나머지 바로 집으로 돌아왔고 첫 날부터 에어비앤비 방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늦게 일어났다. 아침에 뉴요커들 출근 시간에 베이글과 커피를 마시면서 독서를 하거나 고층 빌딩에서 요가를 해 보고 싶었던 그런 계획따윈 지켜지지 않았다; 이것들은 나중에 진짜 뉴욕에 살 때 해 보지 뭐…

둘째날은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니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갔다.  그녀를 보기 위해서는 Staten Island 로 가는 페리를 타야하는데, 이게 무료다! 뉴욕의 상징인 그녀나 이 섬에 관련 된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 이 섬이 예전에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여서 이민자들의 Immigration 을 담당했다고 아빠가 말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리버티 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이었으며 구스타프 에펠도 설계에 참여했다고…노을지는 바다 위의 그녀는 황홀할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빠가 거듭 강조한 뮤지컬 감상. 티켓박스에서 당일 예매를해도 너무 비싸다. 리서치 도중 Tix 라는 앱을 알게 되고 10%할인 쿠폰을 먹여 Christmas Spectacular 라는 공연을 봤다. 여자들이 한 100명쯤은 나와서 캉캉을 추는 그런 공연이였는데, 중간중간 졸았다. 공연은 그저그랬지만 6천명을 수용하는 Radio city 의 그 규모에 놀랐다. 젠장…브로드웨이 공연볼껄 이라는 후회가 지금도 들지만 못본들 어떠하리? 나중에 또 기회가 되겠지…

뉴욕은 공원이 참 많다. Central park 이나 Bryant park 등등…그냥 별 생각 없이, 정처 없이 걷는게 너무나 좋다. 엘리뇨 현상으로 제법 따듯했던 겨울의 공원들이, 거대한 비눗방울을 쫒는 아이들, 결혼 사진을 촬영하는 커플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만드는 뉴욕의 풍경은 왜 뉴욕이 Melting pod 인지 다시 깨닫게 해 준다. 그나저나 Bryan park에서 아이스스케이팅을 즐기지 못한 것 또한 한이 된다. 이렇게 한이 많아야 뉴욕으로 다시 돌아오겠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오후, 우리는 High Line을 걸었다, 어떤 거지가 돈을 달라고 했는데 현금이 없다고 했더니 인종비하 발언을 들어야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Racism 이였고 나는 그닥 담아두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우리의 국적도 맞추지 못했으니 기분 나쁠 필요가 없지 아니한가. 근데 내가 정말 중국인처럼 생겼니? ; 내 여행을 방해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무튼 High Line은 최근 박원순 시장이 구상하는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모티브가 된 공간이다. High Line 프로젝트에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공동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너무 예쁘다. 곳곳에 의자와 썬탠베드가 있는데 날씨가 좋으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고한다.

뉴욕의 박물관들, MoMA (Museum of Modern Art) 그리고 Metropolitan…미술에 관심 없는 나도 너무 좋았다. 미국에서의 하일라이트는 Starry night과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였다. 조지 워싱턴; 독립 전쟁 대륙군 총사령관, 미국 건국의 아버지 그리고 초대 대통령.미국이 강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위대한 리더들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뉴요커; 뉴욕 사람들은 친절하고 붙임성이 좋은 것 같다. 사람 관련 에피소드 몇 개를 써 볼까 한다.

Ep1.

뉴욕에서 가장 큰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마치고 할렘의 한 싸구려 Pub에서 맥주를 마셨다. 콜롬비아 대학 옆에 위치해서인지 학생들이 많이 오는 그런 곳이였다. 장난끼가 얼굴에 한 가득한 20대 청년이 옆으로 오더니

그 놈 “you know what?”
나 “what?”
그 놈 “Jesus loves you”

Ep2.

뉴욕의 어퍼이스트 사이드를 걷고 있는데 우아하신 아주머니가 길거리 쓰레기통에 담배 꽁초로 인한 작은 화재를 보고 안절부절하고 계셨다. 길 건너에서는 NYPD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지만 그에겐 그 작은 불을 끌 도구가 없었다. 내 손에는 먹다만 3불짜리 김빠진 코카콜라가 들려있었고 빠르게 화재를 진압했다. 나는 그 둘에게 “you are the hero of NYC today” 라는 말을 들었다. 어깨가 으쓱해진 하루였다.

Ep3.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에어비앤비 호스트 Ali와 어느 아침날 대화

A: 나는 꼭 아침을 해 먹는 사람이야, 근데 우유는 못 먹겠어. 자메이칸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거든!

S: 나도 우유를 좋아하지만 먹으면 탈이 나. 우유를 소화시키는 무언가가 빠져있는 사람인가봐

A: 우리는 그럼 형제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Brother!

Ep4.

싱가폴에 살던 나는 겨울옷이나 심지어 긴팔도 별로 없었다. 이런저런 옷들을 모조리 가져갔는데, 그 중 하나가 Top10에서 5천원주고 산 맨투맨티를 뉴욕에서 자주 입었다. MoMA에 그걸 입고 갔는데 박물관 직원 흑형께서 날 보고 폭소를 하더니 제발 너 티셔츠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MoMA 해시태그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말했다 ‘넌 곧 슈퍼스타가 될꺼야!” 인스타그램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티에는 Free Max B 라고 써 있었는데 이놈이 할렘에서 잘나가는 래퍼였는데 살인, 절도 등 중범죄로 깜빵에서 썪고 계시는 분이다. 동양에서 온 멍청하게 생긴 남자 아이가 그를 풀어달라는 티를 입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했나보다. 그 흑형 이 외에도 다양한 뉴요커들이 티에 반응했고 그 티는 Ali에게 헌정하였다.

이 외에도 브루클린 브릿지, 살고 싶은 동네인 브루클린, 루즈벨트 트램, 딱 내 스타일인 미국 피자, 소유욕 없는 나를 Shopping monster로 만들어버린 우드버리 아울렛, 뉴욕 야경이 보이는 루프탑바와 클럽, 뉴욕에서 만난 다양한 친구들…돌아보면 너무나 좋았던 기억들, 이런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만남과 헤어짐, 새로운 것들에 대한 경험 여행은 역시 마약이야. I will be back, you lovely New York!

 

글쓴이: simpsonkorea

사람, 여행, 디지털마케팅 그리고 Growth hacking 에 관한 모든 것에 관심 있습니다. Born and raised by the internet.